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 전,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름다운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유혹에 빠져 남편과 딸을 버리고 트로이로 건너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모욕을 참을 수 없었던 메넬라오스는 자신의 형이자 그리스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던 미케네 왕국의 왕인 아가멤논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내를 되찾기 위한 원조를 청하였습니다.
동생의 청을 들은 아가멤논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너만의 수치가 아니라, 그리스 전체의 수치다. 이번 기회에 트로이를 단단히 혼내주어야겠다."
그는 사신들을 그리스의 여러 나라에 보내어 그들 간의 옛 서약을 상기시키며 트로이 공격에 합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의 여러 왕들이 이에 찬성하여 제각기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보에오티아 지방의 아우리스라는 항구로 집결했습니다.
그들의 옛 서약이란 헬레네가 처녀였을 때 그녀의 미모에 반한 모든 그리스의 젊은 영웅들이 모두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게 되자, 그녀의 아버지 틴다레오스가 모든 구혼자들에게 '우리는 누구든지 간에 헬레네가 선택한 자를 지지한다.'는 서약을 요청하고 모든 젊은 영웅들이 이에 동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때 헬레네가 선택한 사람이 바로 가장 유복했던 메넬라오스였습니다.
결국 그들의 옛 서약에 따라 모든 그리스 왕들은 제각기 병력을 이끌고 집결하였습니다. 그들은 아가멤논을 '왕 중의 왕'으로 뽑은 다음, 14척의 배와 수만의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원정은 실패했다. 그들은 트로이로 가는 길을 몰라서 미시아라는 엉뚱한 곳에 상륙하게 되었고, 그곳의 왕 텔레포스는 자기의 백성들과 힘을 합쳐서 그리스 군을 몰아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8년 후 아가멤논은 다시 군대를 모으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풍이 불지 않아 항해의 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예언자 칼카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언젠가 아가멤논이 사냥을 나가서 한 마리의 사슴을 잡고서는 '아르테미스라 할지라도 이렇게 멋지게 잡지는 못할 것'이라고 자랑을 한 까닭에 화가 난 여신은 그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가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다니! 그것도 왕 중의 왕 아가멤논의 딸을 말이죠...
그러나 아가멤논은 예언자의 말을 따라 비정하게도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순풍이 불기 시작했고, 함대는 순조롭게 항해하여 트로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지 9년이나 되어도 승부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것은 올림푸스의 신들이 양편으로 갈라져 제각기 어느 한쪽을 후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파리스와 헬레네가 도망한 지 10년째로 접어들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당대 최고의 명장인 아킬레스와의 사이가 나빠지게 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여자 포로 때문이었습니다. 아가멤논의 여자 포로 중에 크리세이스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 여자는 아폴로의 신관 크리세스의 딸이었습니다.
딸을 잃은 늙은 신관은 아가멤논을 찾아와 딸을 돌려달라며 애걸했습니다. 그러나 아가멤논이 돌려줄 것을 거절하자, 그 신관은 태양의 신인 아폴로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신관의 기도가 아폴로에게 통했는지, 그리스 군의 진영에는 무서운 질병이 돌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언자 칼카스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습니다.
"아폴로의 신관 크리세스의 딸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이 질병은 아폴로의 진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가멤논은 몹시 화가 났지만, 예언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의 말을 전하러 간 아킬레스에게 아가멤논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내 포로는 돌려주지. 그 대신 자네의 포로인 브리세이스란 여자를 나한테 줘야 하네."
아킬레스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좋소, 당신 조건대로 하지. 그 대신 나는 이 전쟁에서 손을 떼겠소."
아킬레스는 이렇게 말을 내던지고는 자신의 진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후로 전세는 완전히 트로이 쪽으로 기울어졌다. 아킬레스가 없는 그리스 군은 연전연패였습니다.
그리스 군이 거의 전멸에 이를 정도까지 몰렸어도 아킬레스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때 아킬레스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그리스 군의 영웅 중의 한 사람인 파트로클로스는 그리스 군의 참패를 보다 못해 아킬레스에게 전투에 참가하도록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도 아킬레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마침내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스에게 한 가지 청을 합니다.
"좋아! 그렇다면 자네의 갑옷과 군사들만이라도 빌려주게."
아킬레스는 마지못해 응낙했습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트로이 군과 접전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을 본 그리스 군은 아킬레스가 다시 출전한 줄로 알고 용기가 솟았으며, 반면에 트로이 군은 사기가 꺾여 대열이 흩어지고 결국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분전하던 파트로클로스는 트로이 최고의 용장 헥토르와의 결전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스는 너무나 슬픈 나머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내어 통곡했습니다.
"파트로클로스는 나 때문에 죽었다. 내 기필코 이 원수를 갚아 죽은 친구의 원한을 풀리라."
이렇게 결심한 아킬레스는 다시 전투에 나섰습니다. 그가 전투에 나서자 그리스 군은 연전연승하였으며, 트로이 군은 막다른 궁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헥토르는 죽기를 각오하고 아킬레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헥토르는 아킬레스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킬레스의 창에 찔려 숨을 거두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아킬레스여, 내 시체만은 부디 우리 부모한테 보내주시오."
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아킬레스에게 이러한 부탁이 통할 리 없었습니다.
아킬레스는 헥토르를 자신의 전차 뒤에 매달고는 미친 듯이 트로이의 성벽 둘레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벽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부왕 프리아모스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보다 못한 이 늙은 왕은 성벽에서 몸을 던져 죽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한밤중에 아킬레스의 진지로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였습니다.
늙은 왕은 아킬레스의 발 밑에 꿇어앉고는 간곡한 목소리로 호소했습니다.
"아킬레스여, 그대의 부친을 생각해 보게. 그대 부친은 아들인 자네가 이렇게 살아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내 아들은 그대의 손에 죽었네. 부디 이 늙은이를 불쌍히 생각해서, 내 아들의 시체를 돌려주게."
아킬레스는 그의 말에 감동하며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왕이여, 잘 알겠습니다. 제게도 늙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대로 시체는 돌려드리겠습니다."
아킬레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늙은 왕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시체가 트로이의 성 안으로 돌아오자 트로이 사람들은 모두 슬픔에 잠겨서 10일 동안 헥토르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전쟁은 계속되어 양군의 많은 영웅들이 죽었습니다.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스도 전쟁의 발단이었던 파리스가 쏜 독화살에 그의 유일한 약점인 발목 힘줄(아킬레스 힘줄)을 맞아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트로이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오랜 전쟁에 지친 그리스 군은 오디세우스의 계략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스 군은 퇴각을 가장하여, 해변에 거대한 목마를 남겨둔 채로 트로이인들이 보는 앞에서 배를 타고 해안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트로이 앞에 있는 테네도스 섬의 그늘에 닻을 내렸습니다.
퇴각할 때 그들은 시논이란 자를 혼자 내버려 두고 갔는데, 이 사나이는 자진하여 트로이 군의 포로가 되어 오디세우스 때문에 이렇게 버림을 받았다고 호소했습니다.
목마는 그리스인이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 이렇게 크게 만든 것은 트로이인이 이것을 성 안으로 끌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까닭은 이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가면 트로이의 함락은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트로이인의 대부분은 시논의 말을 믿고 매우 기뻐하며 성벽을 크게 부수고 목마를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고는 잔치를 베풀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자 시논은 횃불을 밝혀 들고 정해놓은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 신호에 따라 그리스 군이 트로이로 돌아와 사방에서 공격하자 목마 속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나와 성을 점거하였습니다.
트로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불바다가 되었으며 그 찬란했던 문명도 꺼지고 말았습니다.
이상은 기원전 8세기의 시인으로 추정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Ilias)〉에 나오는 내용인데 기원전 13세기에 있었던 미케네인의 트로이 공격을 극화(劇化) 한 것으로 당시 미케네 문명의 사회모습 및 그 해외진출의 양상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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