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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세계사

[요약 세계사] 십자군 전쟁

by 스페이스토리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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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 제도와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안정을 이룩하게 된 유럽 사회는 넘치는 힘을 외부로 쏟아내게 되었습니다. 그 출발 신호를 울린 것이 바로 십자군의 대원정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번성하여 감에 따라서 유럽에서는 많은 신도들이 예수가 일생을 마쳤던 팔레스타인 지방의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기나긴 순례의 길을 떠나곤 하였습니다.

 

이것을 성지순례(聖地巡禮)라고 하는데, 그 당시 이 지방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교도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의 순례에 대해서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았습니다.

 

 

 

10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 제국의 동부로 이동하여 열렬한 이슬람교도가 된 셀주크투르크(Seljuk Turks) 족이 급속하게 그 세력을 팽창시켜 11세기 중엽에는 바그다드를 점령했습니다.

 

그들이 이슬람 제국의 지배자가 되자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방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비잔틴 제국은 그들을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황제가 포로가 되는 등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비잔틴 제국의 알렉시우스 1세는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원조를 요청하였습니다.

 

 

마침 교황권의 위세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던 우르반 2세는 투르크족을 공격하여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되찾고 비잔틴 교회를 로마 교회에 통합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황은 1095년 11월 프랑스의 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개최하고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을 제창하였습니다.

 

교황은 이슬람의 승리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불명예라고 주장하며, 유럽의 귀족들이 내부의 싸움은 그만두고 성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설교하였습니다.

 

웅변술이 뛰어난 우르반 2세는 성지 예루살렘을 잃은 그리스도교들의 비참한 생활과 동방에서 투르크인이 가해오는 위협을 조리 있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싸움은 성전(聖戰)이며 이 전쟁에서 전사하는 자는 모두 천국에서 그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나아가 동방에 금은보석 및 온갖 재화가 수없이 널려 있다는 감언이설로 제후들을 충동했습니다. 우르반 2세의 설교를 듣고 감격한 참석자들은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신다."

 

우르반 2세는 프랑스를 순회하면서 십자군을 제창하였으며, 많은 열성적인 설교사들 또한 여러 곳을 다니며 십자군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이러한 설교의 영향으로 마치 풍선처럼 팽팽한 유럽 내부의 힘이 강렬한 신앙심과 결합하여 대대적인 십자군 운동 이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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