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재밌는 세계사11 [요약 세계사] 프랑크 왕국의 탄생 갈리아 지방 남부 론 강 계곡에는 5세기 중엽 부르군드족이 이주하였으나 갈리아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 것은 프랑크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민족 이동이 끝나갈 무렵인 5세기말에, 프랑크 왕국의 건설자이며 메로빙거 왕조를 창건한 클로비스의 주도하에 라인 강 하류 지역으로부터 팽창하여 갈리아를 포함한 주변 지역으로 그 세력을 확대시켰습니다. 클로비스는 10여 개의 부족을 합쳐 통일국가를 형성한 뒤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교회와 갈리아의 로마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이단인 아리우스파의 서고트족을 에스파냐로 몰아내고 오늘날의 벨기에와 프랑스에 해당하는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클로비스가 가톨릭을 믿었다고는 하나 그의 일생은 모략과 살육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 2023. 2. 22. [요약 세계사] 유럽인구 30% 사망, 중세 흑사병 14세기에는 인구 증가의 추세가 멈추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하여 봉건 사회 붕괴의 징조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때 발생한 흑사병은 백년전쟁과 함께 중세의 종지부를 찍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문제의 흑사병이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14세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이 전염병이 생긴 일이 없었으므로 멀리 아시아나 이집트 등에서 발생하여 유럽에 전염된 것이라고 추측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흑사병은 1346년경에 크림 반도 남부 연안에서 발생하여 흑해를 거치는 지중해 항로를 따라 1347년경에는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만연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흑사병균은 크림 반도에서 상인들의 옷이나 물건 등에 묻어서 혹은 배에 탄 쥐들이나 이미 감염된 환자.. 2023. 2. 21. [요약 세계사] 백년전쟁 중세 말기에 일어난 또 하나의 재난은 백년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은 1339년에 시작되어 1453년에 끝났다 하여 백년전쟁이라 부르지만, 전쟁은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실제로 싸운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백년전쟁의 주된 원인의 하나는 프랑스에서의 발루아 왕조의 성립과 이에 관련된 왕위계승권 문제였습니다.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자 프랑스에서는 많은 논의 끝에 샤를 4세의 사촌 형제인 발루아 백작을 필립 6세로 추대하여 왕위를 잇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어머니인 이사벨라가 프랑스 왕이던 샤를 4세의 딸이므로 혈연으로 따지면 필립 6세보다 자신이 더 가깝다며 프랑스 왕위 상속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문.. 2023. 2. 2. [요약 세계사] 칭기즈칸의 탄생 보이는 것이라곤 푸른 하늘과 끝없는 대지뿐인 몽골 고원의 오논 강변 한 부락에 테무친이라고 하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은 눈에는 불빛이 나고 얼굴에 광명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버지 에스게이는 한 작은 부족의 우두머리였고, 어머니 호에룬은 에스게이가 다른 부족으로부터 약탈해 온 남의 아내였습니다. 테무친이 9살 되던 해에 아버지 에스게이는 타타르인에게 독살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테무친은 다른 4형제와 함께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났습니다. 이 무렵 몽골족의 세력은 보잘것없었으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특히, 테무친의 가족들은 아버지의 명성을 시기하는 여러 부족장들의 압력을 받아 더욱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테무친의 부족은 힘이 약해서 번번이 다른 부족의 습격을 받곤 하여.. 2023. 2. 2.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