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이밥은 ‘이(李)씨의 밥’이란 의미로 조선왕조 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비로소 이 씨인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했습니다.
이팝나무는 이밥나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생각됩니다.
꽃의 여러 가지 특징이 이밥, 즉 쌀밥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팝나무는 키가 20~30미터나 자라고, 지름도 몇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이면서 5월 중순에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꽃을 가지마다 소복소복 뒤집어쓰는 보기 드문 나무입니다.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지는 꽃잎 하나하나는 마치 뜸이 잘든 밥알같이 생겼고, 이들이 모여서 이루는 꽃 모양은 멀리서 보면 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흰 사기 밥그릇을 연상케 합니다.
꽃이 필 무렵은 아직 보리는 피지 않고 지난해의 양식은 거의 떨어져 버린 ‘보릿고개’입니다.
주린 배를 잡고 농사일을 하면서도 풍요로운 가을을 손꼽아 기다릴 때입니다.
이팝나무 꽃은 헛것으로라도 쌀밥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 닮아 있습니다.
이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꽃이 피는 시기가 대체로 음력 24 절기 중 입하(立夏) 전후이므로, 입하 때 핀다는 의미로 ‘입하나무’로 불리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북 일부 지방에서는 ‘입하목’으로도 불린다니, 발음상으로 본다면 더 신빙성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전의 우리 선조들이 자연스럽게 붙인 이름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어원을 찾아내기란 애초부터 어려운 일입니다.
둘 다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더더욱 쌀농사의 풍흉과 관계가 있으니 나름대로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경북 남부에서부터 전북의 중간쯤을 선(線)으로 연결한다면 이팝나무는 그 남쪽에서 주로 자랍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만도 일곱 그루나 되어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향나무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나무입니다.
이외에도 시도기념물과 보호수로 지정된 이팝나무는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온난화의 영향으로 서울 청계천가에 심은 이팝나무도 잘 자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팝나무는 경남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신천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307호입니다.
대부분 정자목이나 신목(神木)의 구실을 하였으며, 꽃이 피는 상태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습니다.
습기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이팝나무는 ‘꽃이 많이 피고 오래가면 물이 풍부하다’는 뜻이니 이와 같을 경우에는 풍년이 들고 반대의 경우는 흉년이 듭니다.
이런 나무를 우리는 기상목, 혹은 천기목(天氣木)이라 하여 다가올 기후를 예보하는 지표나무로 삼았습니다.
이팝나무는 일본과 중국 일부에서도 자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처음 본 서양인들은 쌀밥을 알지 못하니 눈이 내린 나무로 보아 ‘눈꽃나무(snow flower)’라 했습니다.
학명의 속명도 라틴어로 희다는 뜻의 ‘치오(Chio)’와 꽃을 의미하는 ‘안토스(anthus)’를 합쳐서 ‘Chioanthus’라 했습니다.
어린 줄기는 황갈색으로 벗겨지나 나이를 먹은 나무의 껍질은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집니다.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고 타원형이며, 어린아이의 손바닥만 합니다.
표면에는 매끈한 광택이 있고, 가장자리는 밋밋합니다.
잎의 모양이나 크기는 언뜻 보면 감나무와 비슷합니다.
굵은 콩알만 한 타원형의 열매는 짙은 푸른색이며, 가을에 익어 때로는 겨울까지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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