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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세계사] 스파르타의 군국주의

by 스페이스토리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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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스파르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즉 도시국가는 도시와 그 주변의 농촌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폴리스를 도시의 시민만으로 구성된 국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는 주변 농촌의 농민들이 폴리스 시민의 다수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여러 폴리스 가운데서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세력이 가장 강했습니다.

 

 

 

스파르타는 도리아인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침입하여 원주민을 정복하고 세운 국가였습니다.

 

국민은 정복민의 자손인 시민과 정복당해 노예가 된 헬로트(Helot), 그리고 페리오이코이(Perioikoi)라는 반자유인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중 시민만이 정치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계급은 시민들의 의식주 활동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는 귀족정치로서, 형식상의 국가원수인 두 명의 왕과 그 밑에 평의회와 민회가 있었지만 실제 정권은 5명의 감독관 이포로이(Ephoroi)에게 있었습니다.

 

스파르타는 이 귀족정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리쿠르고스가 제정하였다는 법률에 따라 시민들을 교육하였습니다.

 

그것이 소위 스파르타 교육으로서 국가는 시민의 행동, 교육, 결혼 등에 일일이 간섭하여 시민을 국가에 절대적으로 복종시켰습니다.

 

 

 

시민은 누구나 극기(克己)와 엄격한 기율생활(紀律生活)을 하였습니다. 우선 허약하게 보이거나 불구인 갓난아이들은 동굴 속이나 산속 깊숙한 인적이 드문 곳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어린이들은 일곱 살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공동교육소에서 엄격한 육체적 훈련과 애국적 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글과 음악도 배우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교육과 체육 그리고 갖가지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추위나 더위에도 잘 견디는 힘을 기르고 오랫동안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참을 수 있는 체력을 훈련으로 다졌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정신력을 길렀습니다.

 

 

 

예를 들자면 스파르타의 소년들은 때때로 어른들의 식탁에서 훔친 음식만을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때 현장에서 붙들리거나, 훔쳤다는 것이 발각되어서는 절대 안 되었습니다.

 

어떤 소년이 식량으로 쓰기 위해 살아 있는 여우를 옷 속에 감추었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어른들이 그에게 캐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끝끝내 '나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라는 소리만 계속 되풀이했습니다. 결국 그 소년은 옷 속에 있는 여우가 그의 배를 물어뜯어 목숨을 잃을 때까지 훔친 것을 부인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다소 과장된 듯하지만 그들이 소년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시켰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녀들도 국가의 감독하에 격렬한 육체 운동과 정신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리하여 여자들도 강철 같은 정신을 지니고 건강한 신체를 단련하여 튼튼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스파르타군
스파르타군

어떤 스파르타의 어머니에게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8명이 모두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전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스파르타여, 나는 너를 위해 8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8명의 아들을 너를 위해 바쳤다."

 

 

성년 시민은 30세까지 줄곧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병사(兵舍)에서 살았습니다. 30세가 넘으면 비로소 관리장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도 적게 먹었으며, 옷도 검소하게 입고 항상 무기를 휴대했습니다. 또한, 국가의 명령이 아니고서는 마음대로 시외로 나갈 수가 없었는데 만약에 이것을 어긴 자는 탈주자로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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