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발뒤꿈치에 있는 굵은 심줄을 의학에서는 아킬레스 건(腱, Achilles tendon)이라 합니다.
이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us)에 유래됩니다.
아킬레우스는 펠레우스라는 아버지와 테티스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인간인데 어머니는 여신이었습니다.
펠레우스 부부는 아들이 탄생되자 이름을 ‘리귀론’이라 지었습니다.
신인 어머니가 생각하기를 자기는 신이기 때문에 영생 불사할 수 있지만,
이 아기의 아비는 인간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숙명적인 운명이기에 아기의 앞날이 걱정되어,
자기의 핏줄을 물려받은 이 아기를 불사의 신의 영웅으로 만들어 보려고 지아비 몰래 매일 밤 갓난아기를 영생의 불 속에 집어넣었다가 꺼내 건하여 단련시키면서 화상을 입은 곳에는 암부로샤라는 신들이 주식으로 하는 신식(神食)을 발라 치료하여 튼튼한 피부와 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인 펠레우스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흥분된 상태에서 아내가 쥐고 있던 아기를 빼앗았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쥐고 있던 두 발꿈치는 시련의 불에 거슬리지 못했기 때문에 전신의 피부는 강인하게 되어 아무리 힘센 장사가 활을 쏘아도 화살이 뚫지 못하게 되었지만,
발꿈치부위만은 원래의 피부 그대로 남게 되어 아기의 몸 중에서는 가장 약한 부위로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일설에 의하면 이귀론의 어머니가 지옥의 강인 스튜크스강 물에다 양쪽 발목을 잡고서 아이를 거꾸로 강물에다 집어넣음으로써 불사신으로 만들었는데,
그때에 어머니가 잡았던 발목에는 물이 닿지 않아 약한 상태 그대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기를 빼앗기자 화가 난 어머니는 남편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절망하여 자기의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기는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부탁하여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켄타우로스란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괴물이어서 성미가 사나운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킬레우스를 양육한 케이론이라는 켄타우로스는 성품이 온화한 우수한 의사이었기 때문에
어린 아킬레우스를 보다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영양가가 많은 동물의 내장, 특히 사자의 창자를 자주 먹였기 때문에
사자처럼 용맹해질 수가 있었고 멧돼지의 내장을 많이 먹임으로써 멧돼지 같이 용감해질 수 있었습니다.
또 곰의 뼈의 골수(骨髓)를 뽑아 먹임으로써 이것이 아킬레우스의 조혈기능을 좋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전에 지은 아기의 이름이 이귀론 이었는데 어미가 바다로 돌아간 뒤로는 이름을 바꾸어 아킬레우스로 하였습니다.
그리스말로 a는 부정의 뜻이고 Chilleus는 입술이라는 뜻입니다.
즉, 한 번도 어미의 젖꼭지를 빨아보지 못했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킬레우스는 씩씩하고 용맹스러운 장수로 자랐습니다.
이러한 아킬레우스의 자라는 모습을 잘 표현한 그림이 있는데, 프랑스의 화가 르노(Jean-Baptitiste Regnault 1754-1829)가 그린 ‘사냥술을 배우는 아킬레우스’(1782)입니다.
즉, 자라난 아킬레우스가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이며 의사인 케이론으로부터 활 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들의 옆에는 죽은 사자가 있는데 이것은 아킬레우스가 용맹스럽게 사자를 잡았으며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의 힘과 담력을 키우기 위해 사자의 내장을 먹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에게 음악도 가르쳤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의 앞쪽에 있는 수금(竪琴)이 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전하는 경우 전사한다는 신탁 때문에 아킬레우스를 소녀로 변장시켜 스퀴로스 왕인 뤼코메데스의 왕궁으로 보내 왕의 딸들과 함께 살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만물장사로 가장하고 스퀴로스 왕궁을 찾아온 오디세우스에 의해 탈로 나게 됩니다.
오디세우스는 옷 보따리 속에 무기 장난감을 섞어서 갖고 와 왕녀들에게 보였는데 왕녀들은 여자의 속성대로 예쁜 자수 장식이 달린 옷을 골랐는데,
아킬레우스는 남성의 속성을 속이지 못하고 옷에 감싸인 속에 있는 무기를 집어 드는 바람에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을 그림으로 한 것이 프랑스의 화가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이 그린 ‘아킬레우스와 뤼코메데스의 딸들’(1656)입니다.
즉, 오디세우스가 만물상을 가장하고 왕궁에 들어와 왕녀들에게 옷 보따리를 풀어 보이자 왕녀들은 여자의 속성대로 예쁜 옷들을 고르는데 그림의 우측에 있는 아킬레우스는 칼을 골라 쥐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아킬레우스의 여자로서의 변장은 들통이 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제일의 미녀 헬레나를 왕비로 삼았던 그리스의 스파르타(Sparta)의 메네라오스 왕은 왕비를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에게 빼앗기게 되자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트로이(Troy) 전쟁입니다.
아킬레우스도 이 전쟁에 그리스 군으로 참전하였습니다.
호메로스 작이라고 전해오는 ‘일리아스’는 10년간 계속된 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 주제가 바로 ‘아킬레우스의 분노’입니다.
즉, 그 분노는 자신의 애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은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전쟁을 거부하고 돌아섭니다.
아킬레우스가 빠진 그리스 군은 연전연패하자 아가멤논은 오디세우스, 아작스, 피닉스 등을 특사로 보내 돌아오기를 요청하였으나 아킬레우스는 단호히 이를 거절합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고 전투에 나갔던 가장 절친한 친구 패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토르에 의해 죽게 되자 아킬레우스는 태도를 바꿉니다.
비탄에 잠긴 아킬레우스는 복수를 맹세하고, 어머니 테티스가 준비해 준 새로운 갑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가 연전연승의 전과를 올리다가
마침내 적장 헥토르와 일대일로 싸우게 되었는데 결국 적장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게 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죽은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단 채 트로이 성 주변을 돌게 하여 기세를 올렸으며,
또 한편으로는 패크로 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빙빙 돌게 하여 그의 원수를 가쁜 것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찾아와 제발 자기 아들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이를 받아들여 헥토르의 시신을 청결한 흰 천으로 싸서 그의 아버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여기까지로 끝맺었지만, 그러나 싸움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고, 적장 헥토르는 죽었지만 그리스 군에게 전승의 운이 찾아들지는 않았습니다.
십 년을 끌어오던 전쟁에서 트로이 군의 연패로, 종반전에 접어들자, 이름 있는 용장들이 하나하나 죽어갔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노도 같은 위세로 적의 성문을 덮쳤으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는 적막한 광경이었습니다.
때마침 적장 파리스가 쏜 독화살이 그의 발뒤꿈치에 박혔습니다.
이곳이 그의 약점이자 가장 약한 곳에 명중한 것입니다.
쓰러지는 그의 가슴팍에 두 번째의 화살이 꽂혔습니다.
신통력을 상실한 아킬레우스는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즉, 용장 아킬레우스는 아킬레스 심줄이 약한 탓으로 죽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 테티스는 제우스신을 찾아가 아킬레우스의 생환을 부탁하였는데,
이 장면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프랑스의 화가 랑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가 그린 ‘유피테르와 테티스’(1811)입니다.
테티스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서 나체가 되어 간청하지만 유피테르(제우스)는 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결국 아킬레우스는 모정에 의해 몸이 튼튼하게 자랐지만,
어머니의 지나친 처사로 인해 생긴 약점 때문에 그의 아킬레스건은 끊어지고 만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