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한 해부와 실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460?~BC377?)는 동물 해부를 통해 생식과 유전을 설명했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 역시 동물을 관찰하여 해부학과 발생학을 발전시켰습니다.
2세기 로마의 외과의사였던 갈레노스(Claudios Galenos, 129~199)는 원숭이, 돼지, 염소 등을 해부하여 심장, 뼈, 근육, 뇌신경 등에 대한 의학적 사실을 규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6세기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에 의해 인체해부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동물 해부 연구는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였습니다.
동물실험이 독성학, 생리학 등의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19세기 이후입니다.
1860년대에 근대 실험 의학의 시조로 불리는 프랑스의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는 특정한 물질이 인간과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실험이 독성학과 인간 위생학에서 확실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동물실험을 생리학 분야의 표준적인 연구 방법으로 확립시켰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의 탄저병 연구와 백신 실험에도 양 등을 활용한 동물실험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한편, 1900년경에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Ivan P. Pavlov, 1849~1936)는 개의 식도에 관을 삽입해서 타액이 입 밖으로 나오도록 수술한 뒤에 조건반사(conditioned reflex)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렇게 동물실험이 의학과 생물학을 진보시키는 데 필수적인 과학적 방법으로 자리 잡는 동안,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늘어갔습니다.
베르나르의 실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가족과 조수들은 열성적으로 동물실험에 반대했는데, 베르나르의 부인인 마리 프란시스 마틴(Marie Françoise Martin)은 1883년에 프랑스 최초로 동물생체해부 반대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도 동물실험에 마음의 갈등을 느낀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주도 하에 1876년 최초로 동물실험을 규제하는 동물학대법(Cruelty to Animals Act)이 제정되었습니다.
다윈은 생리학 분야에서 동물실험이 실제로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끔찍한 동물실험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1900년대 초에는 런던대학의 베일리스(William Maddock Bayliss, 1860~1924) 교수의 심리학 실험실에서 갈색 테리어 개를 해부한 실험의 합법성을 두고 의대생들과 동물생체해부 반대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동물생체해부 반대자들이 죽은 개를 기리는 동상을 세우면서 동물실험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이 수년간 계속되었고, 이 갈색 개 사건(brown dog affair)을 계기로 동물실험을 둘러싼 문제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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